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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Tags
갑상선암
Published
2022/09/10
Author
J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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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사촌누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도 암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반드시 암 검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 갑상선에 혹이 있어 지켜보고 있었는데, 혹시 몰라 바로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내가 받은건 ‘총조직검사' 였는데, 일반적으로 받는 조직검사와는 다르게 엄청 큰 바늘을 집어넣어서 더 많은 조직을 채취하는 유형이다. 그래서인지 바늘이 목에 들어왔을 때 엄청 불편했고, 검사 당일에는 두통이 멈추지 않았다.결과는 암일 확률 60~75%였으며, 7일 후 강남세브란스에 외래 예약을 했다. 시티촬영, 혈액, 소변검사 등 5시간에 걸친 검사를 받았는데, 젊은사람은 정말 얼마 없고 대부분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 한편으론 씁쓸했다. 한때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는 목적없는 원망을 했으나 누굴 탓할까. 그저 내가 운이 없었을 뿐인것을.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장수하는 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모른다. 그저 아빠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다는 정도만 안다. 할머니는 2022년 기준 91세에 아직도 일을 하고, 일터까지 수 km에 달하는 거리를 거의 매일 걸어다닐 정도로 아주 정정하다. 외조부모도 현재 90세 가까이 됐으며 아직도 일을 하고 뛸 수도 있을정도로 정정하다. 그래서 나도 무병장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젊은나이에 그것도 중년이상 여성이 호발군인 갑상선 암이라니. 결과를 듣고 자주 우울해졌다.
하지만 나는 우울한 내 자신을 볼 때마다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즐겨보는 의학의 역사라는 유튜브를 틀었다.
내가 겪었던 현대의 질병들도 조상들의 무수한 희생과 실험이 있었기에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안좋은 생각을 하다가도 이런 역사를 생각하면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난것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1950년대에 태어났으면 왜 죽는지도 모르고 40대에 요절 했을 것이다.
2022년 8월 21일,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병원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두근거리고 긴장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잘 하지 못했다. 후기들을 보면 무기력감과 우울증에 빠져 너무나도 힘들다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아마 갑상선이 몸의 활력에 관련된 기관이다보니 평소와 다른 호르몬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는 것 같다.
입원 후 수술을 위해 간호사와 1:1 코칭을 받고 바로 밥이 나왔다. 수술은 22일 오전이란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어렸을때 먹었던 병원밥은 엄청 싱겁고 맛이 없었는데, 내가 입맛이 바뀐건지, 전혀 싱겁지 않았고 너무 맛있게 먹었다. 소소한 행복으로 잠시나마 근심을 덜 수 있었다.
병실은 정말 시끄러웠다. 상태가 정말 안좋은 할아버지 부터 정말 활력 넘치고 긍정적인분 까지. 삶을 대하는 자세의 끝과 끝을 봄으로써 나는 반드시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말 놀라웠던것이 있는데, 바로 사람의 의지력이 굉장히 약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성장함에 따라서 자연스레 의지력이 강해지고 자기관리를 어린애들보다는 잘 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병실에서 마주한건 이 생각과 전혀 상반되는 결과였다.
내 바로 옆의 할아버지는 당뇨병 때문에 입원 했는데, 소변도 제대로 못보고 인슐린 주사 없이는 전혀 생활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당뇨때문에 발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누워서 소변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믹스커피를 마시겠다고 새벽에 일어나 정수기까지 가고 화장실에서 몰래 먹으러 갔다.
그런데 침대에서 일어날 때 팔에 꽂혀있던 링거가 빠져버렸다. 문제는 당뇨때문에 감각이 떨어져 빠진줄도 몰랐고, 지속적으로 출혈이 일어나 병실 → 정수기 → 화장실 → 대변기 까지 피를 질질 흘리면서 가버린 것 이다. 바닥에 흘린 피가 화장실 대변기 까지 이어져 자살로 착각한 간호사가 코드블루(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환자가 생길 경우 전체방송으로 안내) 를 외쳐 우리층에 있던 간호사들이 난리가 났다. 도대체 몇명에게 피해를 끼치는건지. 솔직히 진짜 꼴불견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이 사건이 있은 후 딸과 통화를 했는데, ‘사람 병신 만들지 말고 빨리 퇴원시켜라' 라고 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딸이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잘 치료받고 퇴원하자' 라고 타일러도 전혀 들을 생각을 안했다. 설탕이 그렇게 먹고싶었을까. 죽음앞에서는 사람은 후회한다던데, 그저 먹고싶은것을 먹지 못해 불행해 하는 어린아이와 다름없는 모습에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꼭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이 할아버지 말고도 대부분이 그랬다. 긍정적인 한 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설탕을 못먹으면 죽는병에라도 걸렸는지 하나같이 어린애 같다.
간호사: 할아버지, 당뇨가 너무 심하셔서 억지로 화장실까지 가지 마시고, 여기서 소변 누세요~
할아버지: 아 알았어~
간호사: 할아버지, 혹시 커피 드셨어요?
할아버지: 아 먹었지~
간호사: 혹시 달달한걸로 드셨어요?
할아버지: (대답없음)
간호사: 당뇨가 심해서 이제는 진짜 드시면 안돼요. 알았죠?
할아버지: (대답없음)
이 레파토리로 한 사람당 하루에 2번은 대화한다. 그냥 안들어도 그만인 잔소리로 치부 해버린다. 제멋대로 할거면 도대체 병원에 돈내고 왜 있는건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수술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는 괜찮았다. 마취에서 깰때는 언제나 힘들지만, 피부를 들어내고 조직들을 제거한 것 치고는 목도 조금씩 돌릴 수 있었다. 정말 빨리 회복해 23일에 퇴원했다. 퇴원 당일부터 바로 산책을 했고, 매일매일 운동하며 좋은 음식만 먹었다.
퇴원 후 3일째인 25일에 여자친구가 찍어준 사진. 30분 정도의 등산도 가능한 몸상태가 됐다.
사람들이 왜 갑상선 수술 후 우울증에 걸리는지 알 것 같았다. 몸은 예전같이 활력있지 않고, 매우 졸린상태가 반복됐다.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싶지 않았다. 수술을 받고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나도 그 중 한명이 되고 싶었다. 예전부터 나는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었다. 현재에 절망하지 않고 미래의 가능성을 보며 살아가는 자세를 또 다시 취하기 위해 아직도 노력중이다.
매일매일 산책하고 몸에 안좋은 음식을 절제하며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자세를 다시 찾아가며 하루하루 회복하고있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인 ‘내가 30주년 동창회에 가서 인생에 대해 깨달은 것 들’ 을 다시 상기하며 자야겠다.
소중한 사람을 가까이.